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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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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倭館(왜관)’ 이란 조선시대 일본인이 건너와서 통상하던 곳을 말하는데, 고려말기 이후 조선초까지 倭寇(왜구)의 노략질이 심해지자 회유책으로 三浦(삼포)를 열어, 일본인이 왕래하며 무역하는 것을 허가하여 倭人(왜인)과 통상을 하고, 일본 사신의 유숙 등을 위해 설치한 공관의 일종이었다.

당시 왜관이 설치된 곳은 부산부근 및 서울에 5개소, 낙동강의 중로에 倭使(왜사) 전담의 유숙소인 小倭館(소왜관)이 약목의 관호동과, 倭館面 錦山二里(왜관면 금산2리)의 두 곳을 포함하여 5개소로 도합 10개소인데, 그 지명이 현재까지 그대로 존속되어 오는 곳은 칠곡의 왜관 뿐이다. 당시에는 지금 倭館(왜관)의 중심지인 洛東江邊(낙동강변)은 모래밭으로 인가가 없었으며, 현 石田里(석전리) 일대에만 사람이 살고 있었으므로 오히려 石田(석전)이라고 불리워진 곳이었다.

지금의 倭館邑(왜관읍)은 일본인들이 京釜線 (경부선)철도를 부설(1905년)하면서 지금의 舊 倭館(구왜관)에 역을 설치하려고 하였으나, 그곳보다는 인가는 없어도 돌밭 앞에 펼쳐져 있는 낙동강변의 넓은 지대가 장래 발전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거기에 역 간판을 倭館(왜관)으로 달게 되면서부터 倭館(왜관)이라 불리게 되었다. 이제까지 倭館(왜관)이라 부르던 若木面 觀湖2里(약목면 관호2리)는 舊倭館(구왜관)이라 부르게 되었다.

왜관리에 대해 자연부락명, 유래로 구분한 표입니다.
자연부락명 유 래
웃개(上浦)·아랫개(下浦) 石田里 (석전리)자고산 일대에서 發原(발원)하여 回洞(회동)을 지나 洛東江(낙동강)으로 유입되는 巴彌川(파미천)을 경계로, 그 北(북)쪽을 웃개(현 왜관 1, 2, 3, 4리)라 했고, 南(남)쪽을 아랫개(하포)라 했다. 현재 巴彌川(파미천)은 1970년에 복개하여 도로로 활용하고 있는데, 칠곡군축협청사에서 낙동강으로 直向(직향)하는 하천이다.
갱빈(江邊)·입산이 개(入山) 현 왜관초등학교 남쪽과 동쪽에서 동정천 북쪽 일대의 강변 갯밭을 말하는데, 1910년 한일합방 직후 일본인 입산승(이리야마·노부루)이 荒(황)·한 불모지인 이곳 모래밭을 개간, 사과나무와 뽕나무를 심어 살았다고 해서 「입산이 개」라고 불렀다.이곳 일대가 강변 모래밭이라 인가가 없었으나 3·1운동 직후 碧珍李氏(벽진이씨)가 정착, 마을이 형성되면서 갱빈이라 불려 왔으며, 현재 왜관전신전화국을 비롯하여 아파트단지가 조성되어 있으며, 行政區域上(행정구역상) 왜관 7, 12, 13, 14里(리)에 해당한다.
달오·月塢洞 月塢洞(월오동)은 倭館邑(왜관읍)에서 남쪽으로 약 2㎞ 떨어진 마을로서, 서쪽에서 동쪽을 보면 산이 달月字(월자) 모양으로 두둑을 모아 놓은 것 같다고 하여, 달月字(월자) 두둑 塢字(오자)를 月塢(월오)라 불렀다고 한다.한편, 朝鮮 端宗 元年(조선 단종 원년)(1453)에 碧珍人 折衝將軍 李末丁(벽진인 절충 장군 이말정)이 星州椧谷(성주명곡)에서 이곳으로 移居(이거)해와 그 자손들의 世居之鄕(세거지향)으로 오늘까지 살아오고 있으며, 大司成 月塢 李均公(대사성 월오 이균공)의 號(호)를 따서 月塢(월오)라 불렀다고도 한다. 마을 뒤 오금재 고개가 있는데, 壬辰倭亂(임진왜란)때 李如松(이여송)이 地形(지형)을 보고 맥을 끊은 자리라 전해오고 있다.
구장터 倭館邑 倭館3里(왜관읍 왜관3리)에 형성되었던 장터로서, 1905년 倭館驛(왜관역)이 設置(설치)되면서 市場(시장)이 成(성)되어 農水産物(농수산물) 및 各種 生活用品(각종 생활용품)이 去來(거래)되어 錦泉·星州·仁同(금천,성주,인동)외 인근지방에서 많이 利用(이용)되어 번창하였다. 현 왜관3리와 4리 사이 넓은 도로변에 設市(설치)되었으나 現代式 市場(현대식 시장)이 생김으로 사양길에 들었다
  • 관리부서 왜관읍 관리자 박정균 문의 054-979-5223
최종수정일 2021-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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